한국역사의 조선시대 전기
한국역사에서 조선시대 전기는 1392 ~ 1506년까지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태조가 왕실을 개성에서 한양(지금의 서울)으로 천도하여 행정, 경제, 사회를 제도적 기반을 다지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선의 많은 문화와 정서는 고려시대와 비슷한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조선하면 성리학이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여성의 인권도 상당히 높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태종에 의해 왕권을 강화하였고 세종에 이르러 군사, 교육, 과학, 외교 등등 다방면에 엄청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전기의 상황
조선시대 전기의 상황은 14세기 말 고려 사회가 어떤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14세기말 고려는 기존 귀족 세력인 권문세족과 이에 반대한 새로운 귀족들의 갈등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이 무렵 고려의 무장 이성계가 왜적, 홍건족, 여진의 침략을 여러 차례 격파하면서 중앙 정계에서 명성과 권력을 얻던 시기입니다.
당시 고려 조정은 철령위원회 문제로 외부에서는 명나라와 대립하였고 내부에서는 친원파와 친명파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고려는 최영을 중심으로 요동을 정보하기 위해 요동정벌군을 조직하였습니다. 이때 우군도통사를 담당하던 이성계가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상의하여 평양에 있던 최영 장군에게 군복귀를 거듭 요청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철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성계와 조민수는 1388년 5월 20일에 수도 개경으로 돌려 회군을 일으켰습니다.(위화도 회군)
이성계는 수도 개경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최영군을 숙청하여 신돈의 아들이라며 우왕을 폐위시키고 창왕을 다시 즉위시켰습니다. 이듬해 다시 공양왕을 왕으로 즉위시켰습니다. 또한 사전개혁법을 단행하여 과정법을 공포하였습니다. 전면적인 개혁으로 이성계, 정도전, 조준 등이 막대한 부담을 받았지만 권문세족 농장을 몰수하면서 그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한편 공전의 증가로 국민소득이 증가하여 신왕조 조선의 경제적 기반이 확립되었습니다.
1392년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개경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이고 7월 17일 개경 수창궁에서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받은 이성계가 마침내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건국 후 1년 만에 이성계가 국호를 바꾼 것입니다. 1393년 2월 15일 국명을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경하고 1394년 1월 한성부로 천도합니다. 태조는 고려시대에 큰 혼란이었던 불교 대신 유교를 존중하고 정치와 교육의 그본 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불교가 점차 쇠퇴하고 유교는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조선시대 전기의 제도의 정비와 문화 융성
조선시대 전기의 제도의 정비와 문화 융성은 두차례 왕자의 난을 정리한 태종에 의해 시작됩니다.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임금 중심의 통치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관료제도를 개편하였습니다. 태종은 양전사업과 호구조사를 통해 사병을 혁파하였고 세제와 호적제도를 개혁하였습니다. 또한 도평사가 폐지되고 의정부가 설립되면서 왕실의 외척과 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정치를 안정시켰습니다. 또한 언론기관인 사간원을 독립시켜 주체를 견제했습니다. 또한 태종 때부터 지방제인 8도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러한 확고한 태종의 왕권강화를 바탕으로 왕위에 오른 세종은 학문, 군사, 과학,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정치도 안정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국가 이념으로 성리학이 정착되었고 고려 후기에 도입된 면화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또한 국방 안정화를 목적으로 포병생산과 조선 기술이 개발되어 북쪽 4군 6진이 개척하여 국경을 마련하고 남쪽으로는 왜구의 약탈을 막기 위해 대마도를 정벌합니다. 또한 궁궐 안에는 학습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연구기관인 집현전이 세워졌습니다. 그 밖에도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우량계와 금속활자가 개선되고 악기도 정리되었습니다. 다양한 책들이 개선된 금속활자로 출판되었고 의학서 <향약집서>를 통해서 의료관계가 집중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세종의 장님인 문종이 짧은 치세 끝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린왕인 단종을 보필하기 위해 김종서가 국정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세종의 ㄷ루째 아들인 수양 군은 정치적 쿠데타(계유정난)를 일으켜 조정대신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세조는 세종이 채택한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태종이 주창했던 육조직계를 부활시켜 왕권을 강화합니다. 세조는 태종처럼 신하의 권력을 제한하고 <동국통감>, <국조보감>을 만들면서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세조의 손자 성종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문화재 제도를 개편했습니다. 성리학을 바탕으로 사라진 집현전의 기능을 담당했던 홍문관이 수많은 역사서를 편찬하여 세조이래 진행되어 온 법편찬 사업인 경국대전 편찬을 완료하게 됩니다. 성종은 <삼국유사>를 발간하여 조선사회의 기본방향과 이념을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영남 사림파를 등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였습니다.
15세기 말부터 지역 사림 체력은 정치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산군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의해 집단 숙청되었으나 사림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중종 반정을 통해 다수의 중앙정치로 진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기묘사화로 대부분 숙청되고 인종 때 잠심 임명되었으나 명종 때 을사사화를 통해 훈구, 외척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크게 타격을 받습니다. 사림파가 훈구파를 몰아내고 궁정을 장악한 것은 선조 때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사림은 다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붕당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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