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의 고구려 시대
고구려는 고대 한국의 삼국중 하나로 그중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영토의 넓이는 지금의 대한민국, 북한, 중국의 만주 지역을 걸쳤습니다. 기원전 37년에 고조선의 후손 중 하나의 주몽이 건국하였으며, 7세기 후반에 신라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약 700년 동안 번영 하였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주요 일대기
고구려 시대의 주요 일대기는 기원전 37년 주몽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이후 태조는 정부를 중앙집권화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소수림 왕의 치세인 372년 불교를 국교로 채택한 삼국 중의 최초의 한국 왕국이었습니다. 고구려는 고려라고도 불리며 한국 근대명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3세기와 4세기는 중국 및 선비족과 영토 경쟁이 특징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손실과 이익 모두 가져왔습니다. 고구려를 건국하고 242년 고구려 영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요세를 공격하는 고구려-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중국 삼국시대 조위는 244년에 한도를 침략하고 파괴함으로써 고구려에 대한 보복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고구려 왕은 후퇴하였고 옥조와 예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를 깨부수고 그 경제에도 손해를 입혔습니다. 왕은 결국 새로운 수도에 정착했고 고구려는 재건과 옥조와 예 등 지배권 회복에 집중하였습니다. 4세기 초 고구려는 다시 중국(지금의 사마진)을 공격하여 한국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였고 그다음 낙랑과 대방을 정복하여 한국에서 중국인의 존재를 종식시켰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확장은 선비족과 대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선비족은 4세기 중반 고구려의 수도를 황폐화시켰고 왕은 퇴각하였습니다. 고구려는 다시 재결집하여 4세기 후반에 고국원왕이 다시 반격하였고 광개토대왕에 이르러 정복이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고구려는 5세기에 전성기를 ㅁ자이하여 동아시아의 막강한 제국과 열강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은 만주 거의 전역, 내몽골 일부, 러시아 일부를 영토를 확장하였고 한반도 이남으로는 현재의 서울을 백제로부터 빼앗았습니다. 고구려는 광개토왕과 장수왕 아래 황금이를 겪으며 백제와 신라를 제압하여 한반도에서 가장 지배적인 세력이 됩니다. 장수왕의 79년 간의 긴 통치는 고구려의 정치적, 경제적 및 기타 제도적 장치가 완전해졌음을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매우 군국주의적 국가로 한반도의 지배권 다툼과 더불어 고구려는 여러 중국 왕조와 많은 군사 충돌을 겪었습니다.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큰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특히 수나라의 백만병 이상이라 불리던 거대한 세력을 무찌르고 수나라 멸망에 기여하였습니다.
642년 막강한 장군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주도하면서 고구려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당 태종은 고구려에 반대하는 전쟁을 주도하였으나 패배하고 후퇴하였습니다. 태종이 죽은 후에 그 의 아들이 2세 황제가 되어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다시 침략 했으나 고구려의 굳건한 방어에 이기지 못하고 662년에 다시 패배합니다.
그러나 666년 연개소문이 자연사하면서 고구려는 그의 아들과 동생의 후계 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나라가 약화되어 장남은 당으로 동생은 신라로 망명하게 됩니다. 당나라와 신라의 동맹은 667년 망명한 연남생의 도움으로 새로운 침략을 시작하여 668년 고구려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시대의 주요 특징
고구려 시대의 주요 특징으로는 종교를 들 수 있습니다. 자연물 숭배, 지신, 조상신의 3신 숭배와 샤머니즘 신앙이 포함됩니다. 고구려는 부여신과 고등신(주몽)을 사조신으로 여겨 매년 4회 제사를 지냈습니다. 불교는 372년에 전진에서 승려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전해온 것이 시작입니다. 소수림왕은 초문사와 이란 불란사를 건립하여 국가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불교는 국민 사상 통일의 요구에 부합되었고, 호국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왕실에 영합하였습니다. 불교는 호국불교와 현세구복적인 불교로 점차 발전하였습니다. 도교는 624년에 당 고조가 도사를 고구려를 보내온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고구려 사신도 벽화는 도교가 고구려에 전래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고구려 사회의 문화와 정치, 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건축물과 미술 작품에서도 종교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의 종교적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고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고구려의 또 다른 주요 특징으로는 건축과 미술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건축물로는 궁궐이나 사찰 같은 것은 현존하지 않지만, 고분이나 무덤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축양식을 보여줍니다. 고분은 석총과 토총 두 가지 형태가 있으며, 석총은 통구, 토총은 평양 부군에 멋진 구조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석총은 돌로 쌓아 올린 무덤이며, 그 위에 하나부터 여러 개의 지붕을 얹었습니다. 아래층에는 상자 같이 있는 방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토총은 흙을 쌓아 만든 무덤이며, 대개 석건 등으로 만든 목조가구 느낌의 고습한 석실 안에 있습니다.
고구려 미술 분야에서는 고분 벽화가 매우 유명합니다. 이 벽화는 고구려인의 신앙, 사상, 풍속, 복식 등을 나타내는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쌍영총의 인물화나 무용총 등에서는 고구려인의 풍속과 복식을 잘 볼수 있으며,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대담하고 화려한 구도와 경쾌한 화선으로 이루어졌으며, 중국 중남방과 노래나 춤, 거울 어린 여성 등이 나타나 고구려의 대중문화를 보여 줍니다. 이 외에도 고구려인의 천문학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보여주는 각저총, 산사총검의 기술을 보여주는 쌍청총, 고구려의 수렵문화를 보여주는 수렵총 등이 있으며, 훌륭한 기술과 섬세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져서 감탄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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